주메뉴 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
김태호 미술재단 KIM TAE-HO

Text

김태호 내재율의 회화세계 – 이일 (1996)

관리자

김태호<내재율>의 회화세계               -가마꾸라 개인전에 부쳐-

 

이 일 (미술 평론가)

 

 

 이번의 가마꾸라 화랑에서의 김태호 개인전은 동경에서의 두 번째 개인전이다. 처음에는 무라마쯔 화랑에서였고 그것은 1984년 이었다.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기 때문에 당시의 작품에 관한 기억이 희미해져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동경과의 인연은 일단 접어두고 김태호의 작가적 활동은 동세대의 작가로서도 특별한 점이 있어 1977년 이래 국내외에서의 개인전만을 예로 들어도 이번을 포함해서 16번째 이르고 있다. 그 외의 각종 단체전 등의 참가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셀 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김태호가 <내재율>이란 타이틀의 연작을 언제서부터 시작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동일계열의 작품이 나타나는 것은 90년 전후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것이 그 모습의 내밀한 variation과 함께 오늘까지 계속되어 있는 것이다.

 

 김태호는 90년을 전후로 해서 회화의 지지체로 한지와 캔버스작업을 동시에 병행한 시기도 있었다. 그것이 93년 이후 전적인 캔버스 작업으로 이행하게 된다. 그러면 그 이행의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은 작품의 보존 문제와 관계가 있는 것처럼 생각 되지만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그가 지향하는「회화적 구조」의 그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구조와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린다」의 행위와 그것을 짊어지는 「물생」의 통합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태호 회화의 특색은 무엇보다도 먼저 화면의 올오버적인 모노크롬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의 경우 그 올오버는 특수한 것처럼 생각된다. 즉 많은 색의 선이 화면 전체에 있으면서도 그것들이 서로 얽혀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서로 얽힌 선들의 모습이 구작과 최신작의 사이에 약간의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다. 구작에 있어서는 그 선들이 어떤 이미지를 암시하고 있는 것에 비해 근래의 작품에서는 그것이 일종의 기호로 변한 것이다. 동시에 그것에 의하여 화면 전체가 미미한 진동을 띄게 되는 것이다. 즉 <내재율>이 그것이다.

 

 또한 모노크롬에 대해서 말하자면 김태호의 단일색면은 단지 표면상의 일이고 실은 그 표면의 하층에는 몇 겹이나 칠해진 많은 색의 색층이 밑받침이 되어 있다. 실은 화면위의 무수의 선들 =기호는 단지「그려진」것이 아니라 예리하고 평평한 칼로 색층을 인내를 가하여 강하게 「깎아냈다」의 결과로서 그 색층에서부터 스스로 나타난 선이다. 김태호의 회화 그 자체를 말하자면 겹쳐 칠해짐과 깎아냄과의 이중주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이전의 한지작업에서 주어진 텍스츄어에의 동화가 아니라 두꺼운 몇 겹의 다색 색층과 색면 및 선의 통합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 통합을 김태호는 다층의 색층 처리와 함께 거의 완벽하게 실현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그것은 먼저 색면과 선의 통합에 의해 실현되고 그것은 즉 이들 두 가지 요소가 함께 실질적으로는 같은 질의 회화적 소재로써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색면 자체가 단지 「그려진」표면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똑같이 선도 일회적 혹은 즉각적인 필촉에 의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 겹치면서도 단절된 선 그 자체가 마띠엘화 된 색면에 동화하고 있는 것이다. 또 작품의 제작과정에 대해서 한마디 더하자면 그것을 결국 그리는 것과 지우는것의 반복 작업이다.

 

 김태호의 회화에 있어서는 이 두 가지의 행위가 동의어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그 행위는 함께 스스로 표출 시킨다 라기 보다 공간적 <내재율>, 즉 중복된 색층을 통해서 나타나는 리듬에 따르고 있다. 그리고 그 리듬이 화면 전체를 덮고 있는 내밀의 파장이 확산적인 공간성을 포함하고 있다.

 

 김태호의 회화는 결국 화면 전체를 커버하고 있는 이 공간적인 <내재율> 세계이다. 그리고 그 바탕 (기조)을 이루고 있는 것은 동양적 자연관이고, 그것을 그는 일종의 다채와 마띠엘의 연금술이라고 하는 「장인적」인 숙련과 섬세한 감성으로 화면에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겹쳐 칠하는 것과 깎아 없애는 작업의 반복 끝에 김태호의 「색면회화」는 「그린다」는 행위의 궤적(흔적)과 마띠엘의 물성이 함께 사라지고 물질적 표면으로써의 화면이 담백하고 신선한 투명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1 9 9 6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