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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미술재단 KIM TAE-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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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와 개시의 내재율 - 김복영(2004)

관리자

은폐와 개시의 내재율

: 김태호의 ⌜내재율⌟의 시대

김 복 영 (미술평론가⋅홍익대 교수)

전사

1977년 첫 개인전부터 이번 부산일보 부일미술대상 수상 기념 초대전까지 김태호는 스물 한번 째의 개인전을 기록하고 있다. 이 중에서 70년대에서 8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십 여년 간은 수직으로 세워진 곡면 인체 형상과, 이를테면, 샷터의 견고한 가로선들을 교차시키면서 스프레이에 의해 차갑고 정치한 형상을 일구었는가 하면, 그 후 90년대 중반까지 십년 간은 바탕칠한 캔버스에 한지를 붙인 후 스크래치에 의한 무수한 필선과 밀리고 뭉쳐진 종이의 마티에르를 시도하면서, 종이와 안료의 물성 사이로 감추어지고 드러나는 오색의 자락들을 모티프로 빛의 형상화를 시도하므로써, 마침내는 가시적 형상을 해체하고, 순수한 색료와 필선들에 의한 내재율의 초기 단계에 입문하였다.

그의 ⌜내재율⌟은 20 여년에 걸친 ‘형상시대’에 이은, 제 3기의 업그레이드 시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내재율⌟이 확실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97년 이후이지만, 줄잡아 1994년 박영덕 갤러리전으로부터 2002년 동경화랑 초대전을 거쳐 이번 부산일보 초대전에 이르는, 어언 십년의 연륜을 헤아리고 있다.

20여년의 긴 형상시대를 마감하면서 등장한 ⌜내재율⌟이 정작 무엇을 함의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전기 시대를 재음미하면서, 그 간의⌜내재율⌟의 십년 사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날과 씨의 작은 방들

우선, 그의 근작 ⌜내재율⌟의 표정을 일별하자면, 무엇보다 화면에 덕지덕지 쌓인 안료 층을 깎아냈을 때 드러나는 무수한 색료들의 파노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언급을 빌리자면 이러하다. “⌜내재율⌟은 씨줄과 날줄이 일정한 그리드로 이루어진 요철의 부조 그림이다. 먼저 캔버스에 격자의 선을 긋는다. 선을 따라 일정한 호흡과 질서로 물감을 붓으로 쳐서 쌓아 간다. 보통은 스무 가지 색면의 층을 축적해서 두껍게 쌓인 표면을 끌칼로 깎아 내면, 물감 층에 숨어 있던 색점들이 살아나 안의 리듬과 밖의 구조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옛 한옥의 문틀같은, 시골 담같은, 조밀하게 짠 옷감같은 화면이다. 축척행위의 중복에 의해 짜여진 그리드 사이에는 수많은 사각의 작은 방(집)이 지어진다. 벌집 같은 작은 방 하나 하나에서 저마다 생명을 뿜어내는 소우주를 본다.”1)

그의 ⌜내재율⌟에서 관객들이 볼 수 있는 것과 작가 스스로가 언급하고 있는 것 사이에는 그리 큰 차이가 있지 않다. 그의 작품들은 누구에나 친근하고 일목요연하게 다가온다. 우선, 그의 작품들의 표면은 미세한 날과 씨로 이루어진 작은 미립자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방아래 또는 방들과 방들의 틈새에는 더 많은 방들이 촘촘히 그리고 층층이 숨겨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방들의 표정은 모두 얼굴을 달리하면서도, 날과 씨에 제어됨으로써, 각기의 방으로 존재하기 보다는 하나의 커다란 존재로서의 공간에 내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방의 언저리는 불루 ∙ 바이얼렛 ∙ 레드 ∙ 다크 불루같은—한 작품들의 표면 전체 내에서마저—얼굴을 달리하는 매므새를 보여 준다. 방들의 변화는 화이트 ∙ 그레이 ∙ 옐로우, 아니면 페일암바 ∙ 라이트 불루 ∙ 오커의 색조들, 나아가서는 옐로우 ∙ 오커 ∙ 암바, 더 나아가서는 페일 오커 ∙ 라이트 불루 라든가, 암바 ∙ 다크 불루 등 다양하다. 다양한 색료의 틴트와 쉐이드가 층계를 이루면서 빼곡히 채워진 표면의 언저리는 그 배후의 어디엔가 이것들을 원천적으로 통어하는 그리드가 내재해서 작동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작가의 언급에서 보자면, 이들을 컨트롤하는 작인이란 애초 캔버스에 그려 넣은 격자의 선을 시발로 하고 있음은 물론, 뒤이어 일정한 호흡과 질서에 따라 물감이 층층이 쌓아 올려지는, 마치 꿀벌이 밀납으로 집을 짓는 것 같은, 도정으로 볼 수 있다.

그럼으로써, 초기의 완벽한 설계와 그 후의 다소 분방하게 축조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입자(방)들의 ‘틈새(rift)’는 전통 한옥의 문이나 시골 담, 나아가서는 우리의 전통 옷감의 기움질(퀼트)의 틈새를 느끼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선례를 보여 준다.2)

 

은폐와 개시의 동시성

 

그의 ⌜내재율⌟은 분명히 존재의 이중성을 동시에 작동시키려는 의욕을 보여 준다. 그의 생각에는 현존하는 사물은 결코 자신의 존재를 한꺼번에 보여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의 언급은 이러한 생각을 잘 함축해 주고 있다. “보통 20가지 색면 층을 축적시키는데, 이렇게 물감이 두껍게 쌓인 표면을 끌칼로 깎아내면, 물감 층에 숨어 있던 색점들이 오롯이 살아난다. 안의 리듬과 밖의 구조가 동시에 만나는, 이를테면 ‘지워냄으로써 드러나는 역설의 구조’다.”3)

역설의 구조로서, 그의 ⌜내재율⌟은 현존하는 사물들의 존재의 구조를 파헤치려는 데 핵심을 두고 있다. 어째서 사물들은 그것들의 전존재를 동시에 열어 보이지 않는가라고 묻는 대신, 색료를 바르고 지우는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두꺼운 색료의 층을 만들고 이렇게 만듦으로써, 그것들의 층과 층의 틈새에 작은 방이 드러나거나 은폐되는 결과를 창출하고자 한다.

그가, 이렇게 해서, 만들어 낸 방들의 전체는 결코 그것들의 전모를 드러내지 않는다. 겉모습부터 속모습에 이르기까지, 전체는 미지의 빛깔들로 충일하고 넘치는 광휘 속에 은폐된 채 드러난다. 작품의 표면은 무덤덤할뿐만 아니라 ‘중성구조’의 자질을 보이면서, 보는 사람들에게 단지 침묵을 선사한다. 그것들은 결코 스스로를 열어보이지 않는다. 일체를 은폐한 채 단지 찬연한 모습만을 드러 낼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이처럼 광휘로 자신을 은폐하고 있으면서도, 화면은, 작은 미립자의 방들의 이모저모를 빌려, 무엇인가를 드러내고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비록 할 말은 많지만 이것들을 무수한 입자들의 방에다 은닉해 두는 방식으로 말이다.

개시와 은폐, 은폐와 개시를 번갈아가면서 자신의 세계를 아주 조금만 보여 준다고나 할까. 이러한 양의성을 동시적이고 모순적으로 작동시키는 예는 벌집같은 신비한 자연물, 아니면 우리의 전통 건축물과 직조물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지만, 김태호 또한 이러한 은폐와 개시의 동시성을 자신의 ⌜내재율⌟의 원리로 받아들이고 있음이 분명하다. =4)

 

내재율의 세계

그의 ⌜내재율⌟은 문자 그대로의 ‘내재율’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그가 찾고자 하는 것은 외재적 ‘사물성(objecthood)’이 아니라 내재적 ‘진동(vibration)’이다. 그러한 진동은, 그의 언급처럼, ‘물질의 표면을 끌칼로 깎아 냈을 때, 물감 층에 숨어 있던 색점들이 살아남으로써 이루어진다.5) 광부가 채광을 해서 귀금속을 발굴하듯이, 그는 표면의 물질(색료)을 깎아 내어 찬연한 팀버를 얻어내므로써 진동을 창출한다.

이러한 시도와 생각은, 철저하게, 일체를 ‘안으로부터(from within)’ 현전시키려는 태도를 보여 준다.6) 그의 작품 표면이 보여주는 ‘밖의 구조’는, 사실상, 이처럼 안으로부터 발현되는 진동의 리듬에서 창발된 것이다. 밖의 구조가 창발되기 이전의 안의 리듬은 차례로 작가가 애초에 입안했던 시초의 그리드로부터 창발된 것이다. 마치 한옥 창들의 율동이 목수가 마음속에 간직했던 격자로부터 창발된 것처럼 말이다.

‘창발(emergence)’의 구조로 보았을 때, 날과 씨는 하나씩 별개로 발현되는 게 아니라, 이것들을 커버하는, 더 큰 공간으로 상승되므로써 성취된다. 이렇게 해서 발현된 ‘내재율’은 그것의 배후, 또는 자신의 와중에서, 이를 제어하는 원리로서 그리드를 함축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때문에 그의 작품 ⌜내재율⌟에 나타나는 안으로부터의 운동, 즉 내재율은 이보다 더 큰 원리인 그리드와 바깥의 표면구조를 매개해 주는 중간자적 위치에 있음이 틀림없다. 그것은 안으로 부터는 그리드의 지시를 받고, 밖으로는 표면구조를 열어 보이지만, 표면을 제어하므로써 그리드를 개시(開示)하는 역설의 구조이기도 하다.7)

이를 위해, 그의 ⌜내재율⌟은 종래와 같이 스프레이와 한지에 의한 스크래치를 시도하기 보다는 색료의 층위를 만든 후, 이를 깎아내는 조각의 작위를 필요로 하였다. 한옥의 창틀과 벌집의 조밀구조처럼, 내재율을 현실화하는 데에는 회화의 가상적 표면보다는 조각같은 실제의 요철이 보다 설득력을 가질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의 ⌜내재율⌟은 실제의 각인에 의한 요철들이 만들어 내는 경계와 무수한 구멍들로 현실화되었다. 다시 말해, 그림같이 그려냄으로써가 아니라, 실제로 조각해서 각인해낸 미세공간들의 집합과 도열의 형식을 빌림으로써, 내재적 진동을 기대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내재율⌟의 원천

 

⌜내재율⌟의 세계가, 이와 같이, 안의 리듬과 밖의 구조가 동시적이며, 회화적이기보다는 부조의 기법으로 물감의 질료 속에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려 했다고 할 때, 그 원천을 짚어 보기 위해서는, ⌜내재율⌟의 전사를 이루고 있는, 20 여년 간에 걸친 ⌜형상⌟의 시대로 소급해서 검토해 보아야 할 부분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사를 떠나, 그가 살았던 시대의 사회사로 눈을 돌림으로써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그의 개인사로 돌아가 보자. 이 글의 첫 머리에서, ⌜내재율⌟이전의 이십여 년에 걸친 ⌜형상⌟시대가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가운데서도 처음 십년 간은 스프레이작업으로 해체된 인체를 그렸고, 후의 십년은 한지와 물감을 아울러 스크래치하는 가운데 인체를 해체해서 물성의 기골(氣骨)을 형상화하는 데 몰두한 바 있다.

⌜내재율⌟은 분명히 이러한 장기간에 걸친 ⌜형상⌟시대의 노하우의 산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를 간략히 언급해 둠으로써, 그의 ⌜내재율⌟이 하루 아침에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초기 십년에 대해서, 필자는 당시의 미술시평을 통해, 좀 어려운 술어를 사용해서 ‘개념과 표상의 결합’으로 언급한 바 있지만,8) 지금에야 이 용어들의 의의를 되새김해 볼 수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시, 필자는 ‘개념’에 대해서는 그가 우연히 은행의 샷터에서 발견한 견고한 횡선을 지칭하는 말로 대신하고자 했고, ‘표상’에 대해서는 견고한 철책문 안쪽에 갇혀 일하고 있는 행원들의 실존적 상황을 대신하는 말로 사용했지만, 이 용어들은 이미 초기 시절부터 그가 화면의 이중구조로 눈을 돌리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 경우, 개념(샷터의 횡선)은 화면을 제어하는, 훗날의 그리드의 원초적 이해를 함의하는 것으로 되고, 표상은 그리드에 기대어 이루어지는 수많은 작은 방들의 원천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그는 처음부터 그리드와 이를 바탕으로하는 형상의 이원구조를 염두에 두었던 것이 틀림없다.

80년대 후반이후 십년간의 ⌜형상⌟은 분명히 이러한 이해의 궤를 업그레이드하면서 천 위의 한지와 색료의 향연을 드로잉기법으로 연출하고자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전과 같이 꽉 짜여진 균질하고 차가운 스프레이의 화면이 아니라, 천과 한지를 매재로 스크래치하면서 밀고, 찢어, 우연성을 자아내는 환상적인 텃치를 단위체로 등장시키되, 표면을 파서 어두운 선들의 골짜기를 만들고, 주변으로는 작은 분방한 산맥의 주름을 만들어 다소 거치른 굴곡의 맥락이 파상적으로 일게 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방한 자유는 표면적인 것일뿐, 더 본질적으로는, 이 모두는 밑바탕으로부터의 제어(그리드)에 의한 소산임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초기에 이은 십년 간의 ⌜형상⌟은 ‘형상’이기보다는 물성의 ‘기골(氣骨)’을 찾고자 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지적일 것이다.

 

기표의 사회적 생산

그가 이처럼 개인사를 여과해서, 개념과 표상의 이원구조를 거쳐 물성의 ‘골법(骨法)’을 정착시킨 후, 마침내 이를 ‘내재율(internal rhythm)’로 발전시킨 것은, 그러나 그 자신이 딛고 서있던 시대의 사회사와 무관치 않으리라 생각된다. 아니, 어쩌면 그의 작품은 그가 살았던 사회구조가 그처럼 유전하면서 굴절해온 과정과 상동성을 지니는 것은 아닐까.

그가 70년대에서 80년대에 그렸던 ⌜형상⌟은 당시의 산업화⋅도시화⋅탈인간화의 사회 구조를 한치도 어긋남이 없이 빼어 닮은 것으로 이해된다. 스프레이의 기법이야말로 이러한 차가운 현실을 직사해 낼 수 있는 최적의 것임은 물론, 수평의 샷터와 그 속에 그려진 수직의 인간상이 만드는 ‘그리드’야 말로 비정한 시대의 경직된 사회상을 지시하는 최상의 ‘기표(시내피앙)’였음이 틀림없다.

마찬가지로, 80년대에서 90년대에 걸쳐 일구어 낸 분방한 물성의 기표들은, 이를테면, 위선과 허위, 굴절과 어둠 속에서 개방을 지향했던 한 시대의 사회상을 고발하고 또 지시한다. 이 시기에는 자유와 분방이 우리들로 하여금 새로운 낭만을 동경하도록 했지만, 한편으로는, 일탈과 욕구의 분출로 어두운 골과 그늘이 사회 전반을 지배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90년대 후반이래 생산해 내기 시작한, 앞서 언급한, ⌜내재율⌟의 기표들은 그 후 이어진 사회 구조와의 또다른 상동적 지시물을 지시한다. 이 시기에 그의 개인사는 어느 때보다 안정을 구축했고 사회 또한, 정치경제의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안정 기조를 구가했던 것이 틀림없다. 그의 ⌜내재율